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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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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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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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종[連城終] 연성벽(連城璧)이란 전국 시대 조 혜문왕(趙惠文王)이 소장한 구슬로서 진 소왕(秦昭王)이 이를 십오성(十五城)과 바꾸자고 요구한 데서 일컬어진 말인데, 이 구슬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맨처음 초() 나라 화씨(和氏)가 형산(荊山)에서 이 옥박(玉璞)을 얻어 이를 초 여왕(楚厲王)에게 바쳤으나 옥인(玉人)이 이를 돌이라 하므로 왕이 임금을 속였다 하여 화씨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고, 뒤에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이 옥박을 바쳤으나 이때 옥인 역시 돌이라 하므로 또한 임금을 속였다 하여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는데, 결국 그 다음 문왕(文王)이 즉위한 뒤에야 이것이 진짜 옥박이라고 판명되었었다. <史記 廉頗傳, 韓非子 和氏>

연성화씨진[連城和氏珍] 진귀한 보물이라는 뜻이다. 전국 시대 조() 나라에 화씨벽이 있다는 말을 듣고, () 나라 소왕(昭王)이 열다섯 성()과 바꾸자고 청한 고사가 있는데, 이로부터 화씨벽을 연성벽(連城璧)이라고도 칭하게 되었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연소왕[燕昭王] 기원전 314년에 재위에 올라 279년에 죽은 전국 때 연나라의 군주다. 이름은 평() 혹은 직()이다. 연왕 쾌()의 서자로 주난왕(周赧王) 원년에 상국 자지(子之)에 의해 연왕 쾌가 피살되자 소왕은 란을 피해 산으로 달아나 피신 중에 주난왕 4(314) 연나라 국인들에 의해 연왕에 옹립되었다. 일설에는 조무령왕(趙武靈王)에 의해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즉위 초에 황금대를 지어 천하에 현인을 구하자 위인(魏人) 악의(樂毅), 제인(齊人) 추연(鄒衍), 조인(趙人) 극신(劇辛) 등 일시에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현인과 선비들을 예로써 대하고 백성들의 집에 문상을 하고 고아들을 돌보아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이에 시간이 지나자 연나라의 국세가 신장되었다. 주난왕 31년 기원전 284년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5국의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70여 개 성과 그 도성 임치성을 점령했다. 연나라는 이로써 강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연소왕[燕昭王] 전국(戰國)의 연() 나라 끝 왕. 당시 연 나라가 제() 나라에 격파되었으므로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후례(厚禮)로 초빙하여 국정을 쇄신하고 제 나라를 되 공략(攻略)하여 연 나라가 다시 강성해졌다.

연소축대[燕昭築臺] 전국 시대 때 연 나라 소왕(昭王)이 제() 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사방의 어진 사람을 불러들이기 위해 쌓았다는 대(), 그 위에 황금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연수추지성[延壽推至誠] 한 나라 한연수(韓延壽)가 지방 장관으로 나가서, 예를 극진히 하여 현사(賢士)를 초빙하고 간쟁(諫諍)을 널리 받아들이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어 치행(治行)이 천하의 제일로 꼽혔던 고사이다. <漢書 卷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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