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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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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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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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事二首[즉사2] 즉흥적으로 읊다

 

- 王安石[왕안석] -

 

[其一]

雲從鍾山來[운종종산래] 구름이 종산에서 나오더니 [/]

卻入鍾山去[각입종산거] 물러나 종산으로 들어가네

借問山中人[차문산중인] 묻나니 산 속에 사는 사람아

雲今在何處[운금재하처] 구름은 지금 어디에 있나

 

[其二]

雲從無心來[운종무심래] 구름은 무심히 왔다가

還向無心去[환향무심거] 다시금 무심히 돌아가네

無心無處尋[무심무처심] 무심하여 찾을 수 없으니

莫覓無心處[막멱무심처] 무심한 곳을 찾으려 마오

 


왕안석[王安石] ()나라 신종(神宗)~철종(哲宗) 때의 문신이다. 임천(臨川) 사람으로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 시호는 문()이다. 만년에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형공(荊公)이라고 칭한다. 신종(神宗) 때 재상으로서 정치를 개혁하려고 청묘법(靑苗法), 수리법(水利法), 균수법(均輸法), 보갑법(保甲法), 모역법(募役法), 시역법(市易法), 보마법(保馬法), 방전법(方田法), 균세법(均稅法) 등의 여러 신법(新法)을 실시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구당 대신(舊黨大臣)들의 반대를 만나 진남군절도사(鎭南軍節度使)로 좌천되었다. 뒤에 좌복야(左僕射) 등을 거쳐 철종(哲宗) 때 사공(司空)에 오르고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졌으며, 시문에 능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서에는 주관신의(周官新議), 임천집(臨川集), 당백가시선(唐百家詩選) 등이 있다. <宋史 卷327 王安石列傳> <宋元學案 卷98>

왕안석[王安石] 북송(北宋) 무주(撫州) 임천(臨川) 사람이다. 문인이자 개혁정치가로 신법당(新法黨)의 영수이다. 자는 개보(介甫), 반산(半山)이다. 구양수(歐陽受)의 추천으로 인종(仁宗) 경력(慶曆) 2년 진사(進士)가 되었다. 박학하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뛰어난 시인이었다. 당시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만언(萬言)의 서()를 지어 당시의 황제 인종(仁宗)에게 올렸으나 채용되지 않았다. 인종의 뒤를 이은 신종(神宗) 때에 한림학사(翰林學士),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여혜경(呂惠卿) 등의 의견에 의거한 신법(新法)을 시행했다. 집요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당시의 권문세가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당시 원로들의 반감을 사서 신법당과 구법당의 당쟁이 일어났다. 8년 동안 재직했던 재상의 자리에 물러나 있다가 자기가 심혈을 기우려 시행했던 개혁정책들이 파기되는 것을 보고 울화병이 걸려 원우(元佑) 원년인 서기 1086년에 죽었다. 지금의 호북성과 호남성을 칭했던 형국(荊國)에 봉해졌음으로 왕형공(王荊公)이라고 불린다. 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명문장가이다. 저서에 왕임천선생집(王臨川先生集), 주관신의(周官新義), 상서신의(尙書新義), 시경신의(詩經新義) 등이 있다.

즉사[卽事] 눈앞의 사물을 즉흥으로 읊어 내는 일. 눈앞 사물을 즉흥으로 읊음.

종산[鍾山] 종산은 곤륜산(崑崙山)의 별칭이다. 중국 섬서(陝西)에 위치한 높은 산으로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아 설산(雪山)이라고도 한다. 신선 서왕모(西王母)가 그곳에서 산다고 하여 신선 세계의 대명사로도 쓴다.

종산[鐘山] 금릉(金陵) 동쪽 교외에 있는 자금산(紫金山)을 이른다. 금릉산(金陵山)이라고도 한다. 금릉(金陵)은 춘추시대 때 오()나라가 처음 성을 세운 곳으로 전국시대 때 오나라를 정복한 초()나라가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했다. ()에 의해 중원이 통일된 뒤 진시황(秦始皇)이 이곳을 순행할 때 땅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는 말을 듣고 무리하게 지형을 바꾸어 지기(地氣)를 끊어버린 뒤 이름도 금릉에서 말릉(末陵)으로 바꿔버렸다.

종산[鐘山] 남경(南京) 북동쪽에 있는 자금산(紫金山)을 이른다.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孫權)이 조부의 이름을 피휘하여 장산(蔣山)으로 개명하였다가 송대(宋代) 들어 옛이름 종산(鐘山)을 회복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제갈량의 사신이 건업에 이르러 탄식하기를 용이 서린 것 같은 종산과 호랑이가 웅크린 것 같은 석두산, 이곳이야말로 제왕이 터를 잡을 곳이다라고 하였다[諸葛亮使至建業嘆曰, 鍾山盤龍, 石頭虎踞, 此帝王之宅也.]”고 하였다.

종산[鍾山] 종산은 남경(南京)의 북산(北山) 이름인데, 흔히 은자(隱者)가 거처하는 곳이란 뜻으로 쓰인다. 남제(南齊)의 문인(文人) 주옹(周顒)과 공치규(孔稚圭)가 은거하던 곳이다. 주옹은 나중에 세상에 나가 회계군(會稽郡)의 해염현령(海鹽縣令)으로 있다가 임기가 만료되어 도성으로 가는 길에 종산에 들르려고 하자 공치규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종산[鍾山] 중국 강소성(江蘇省) 남경의 북동쪽에 있는 산이다. 산에 자홍색 사암(砂巖)이 많아 자금산(紫金山)이라고도 부른다. 산 서쪽에 있는 현무호(玄武湖)와 일체가 되어 명승지를 이루는데, 특히 남쪽 기슭에 나란히 선 중산릉(中山陵명효릉(明孝陵영곡사(靈谷寺) 등의 유적지를 합치면 광대한 일대 공원과 같은 풍취가 있어 남경 교외에서는 유일한 행락지로 유명하다. 중산(中山), 금릉산(金陵山), 장산(蔣山), 성유산(聖游山), 종산(鍾山) 등의 여러 이름이 있다.

무심[無心] 생각하는 마음이 없음. 물욕(物慾)에 팔리는 마음이 없고, 또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간섭(干涉)이 떨어진 경계(境界)를 이른다.

처심[處尋] 있는 곳을 찾음. 두보(杜甫)() 촉상(蜀相)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까, 금관성 밖에 잣나무가 늘어선 곳이로다[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栢森森]”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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