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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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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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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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王安石] 서기 1019년 태어나서 1086년에 죽은 북송의 문인이자 개혁정치가이다. 구양수(歐陽受)의 추천으로 진사에 급제했다. 박학하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뛰어난 시인이었다. 당시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만언(萬言)의 서()를 지어 당시의 황제 인종(仁宗)에게 올렸으나 채용되지 않았다. 인종의 뒤를 이은 신종(神宗) 때에 한림학사(翰林學士),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여혜경(呂惠卿) 등의 의견에 의거한 신법(新法)을 시행했다. 집요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당시의 권문세가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당시 원로들의 반감을 사서 신법당과 구법당의 당쟁이 일어났다. 8년 동안 재직했던 재상의 자리에 물러나 있다가 자기가 심혈을 기우려 시행했던 개혁정책들이 파기되는 것을 보고 울화병이 걸려 원우(元佑) 원년인 서기 1086년에 죽었다. 지금의 호북성과 호남성을 칭했던 형국(荊國)에 봉해졌음으로 왕형공(王荊公)이라고 불리운다. 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명문장가이다.

왕양재위 공우탄관[王陽在位 貢禹彈冠] 왕양(王陽)은 한() 나라 때의 왕길(王吉)의 자가 자양(子陽)이므로 그를 가리키는데, 왕길과 공우(貢禹)는 서로 친구 사이로서 취사(取捨)를 똑같이 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들을 일컬어 왕양이 벼슬에 나가면 공우가 관의 먼지를 턴다.[王陽在位 貢禹彈冠]”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七十二>

왕어[王魚] 왕상(王祥)의 고사이다. 왕상의 계모가 생선을 먹고 싶어하였는데, 이때 추위가 몰아쳐 얼음이 꽁꽁 얼었다. 왕상이 옷을 벗고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얼음이 저절로 쪼개지며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晉書 卷 33>

왕언승[王彦昇] () 나라 초기에 원주 방어사(原州防禦使)가 되었는데 법을 범한 강인(羌人)에게 바로 형벌을 가하지 않고 관속들을 모아 잔치하다가 대뜸 범인의 귀를 찢어 씹어 먹었으므로 강인들이 감히 변방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엄주[王弇州] 감주는 명대의 문장가인 왕세정(王世貞)의 호. 자는 원미(元美), 호는 봉주(鳳洲)감주산인(弇州山人)이라고도 한다.

왕역의[往役義]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버이의 봉양을 위해서 벼슬할 경우에는 높은 관직을 사양하고서 성문을 지키거나 딱따기를 치며 순찰도는 일[抱關擊柝] 등의 낮은 자리에 거해야 하는데, 부득이 조정에서 나라의 일을 위하여 부를 때에는 또 개인의 사정을 돌보지 말고 나아가서 일하는 것이 의리에 합당하다[往役 義也]는 뜻이다. <孟子 萬章 下>

왕연수[王延壽] 후한(後漢) 때 사람. 그는 재주가 특출하여 어릴 때 노() 나라에 유람하다가 영광전부(靈光殿賦)를 지었음. 채옹도 영광전부를 지었으나 연수의 부를 보고 매우 칭탄하고 자기의 부를 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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