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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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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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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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 혜문왕이 죽고 그의 아들 효성왕이 즉위했다. 7년 후, 진나라 군대는 조나라 군대와 장평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그때 이미 조사 장군은 세상을 떠났고 인상여는 병이 위독하였다. 조나라는 염파 장군를 보내어 응전하게 하였으나, 열세였던 까닭에 성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았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는 염파의 지략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렸다.

진나라가 무서워하는 것은 염파가 아니라 조사 장군의 아들 조괄이 대장이 되는 것뿐이다.”

이 말을 믿게 된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러자 인상여는 이를 극력 반대하면서 말했다.

왕께서 명성만 믿고 조괄을 등용하려는 것은 마치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풀로 붙여 고정시켜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겨우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병서만을 잘 읽었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하는 임기응변을 모릅니다.”

그러나 효성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배워, 스스로 병법가로서 천하에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한 번의 실전경험도 없는 것을 알고 있던 그의 어머니는 왕에게 아들을 장군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조나라 왕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조괄은 대장이 되는 그 날로 기존의 군영들을 병서에 있는 대로 변경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은 채 자기 주장대로만 작전을 전개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보급로를 차단하고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의 군대는 40여일 동안 굶주리며 사기가 떨어졌으며,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었다.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으니, 이즈음 전사한 조나라 군사는 모두 40여만 명에 이르렀다.

 

<史記사기 / 藺相如列傳인상여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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