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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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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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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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愚溪] () 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적거(謫居)했던 곳이다. 계곡이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좌천된 호남의 남부 지방을 말하기도 한다.

우계[牛溪] 조선 중기의 학자 성혼(成渾)의 호이다. 그가 임진왜란 초기에 선조(宣祖)가 몽진(蒙塵)길에 올라 임진강을 건너는데, 그의 집이 강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나와 보지 않았다고 하여 당시 사람들이 좋지 않게 평하였다.

우계간우부문덕[虞階干羽敷文德] 우순씨(虞舜氏)가 문덕(文德)을 크게 발휘하여 양 섬돌 사이에서 무무(武舞)인 간무(干舞)와 문무(文舞)인 우무(羽舞)를 춤추니 70일째 되는 날 유묘(有苗)가 감화되어 귀의했다고 한다. <書經 大禹謨>

우계무간우[虞階舞干羽] 우순(虞舜)이 유묘(有苗)를 토벌하다가 항복받지 못하고 돌아와서 덕을 닦으며 궁중 뜰에서 간우(干羽)의 춤을 추니 70일 만에 유묘가 와서 항복하였다.

우계우덕부[虞階禹德敷] 우 나라 뜰에 우의 덕이 퍼지다. 무력을 쓰지 않고도 문치(文治)가 잘되어 감. ()가 순()의 명을 받아 유묘(有苗)를 정벌하였으나 한 달이 되도록 그곳 백성들이 명을 거역하고 있었으므로 익()이 우에게 권하여 싸움을 중지하고 덕을 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우는 그의 말대로 포위를 풀고 반사(班師)한 다음 두 쪽 뜰에서 춤을 추면서 문덕(文德)을 폈었다. <書經 大禹謨>

우곡[愚谷] 깊은 산골에 오래도록 은거할 것을 상징한 말로, 옛날 우공이란 사람이 태항산(太行山)을 향하여 깊은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면서, 앞에 큰 산이 있어 생활의 불편함을 느낀 나머지, 자손 대대에 걸쳐서라도 이 산을 꼭 파내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하자, ()이 그의 집념에 감동하여 마침내 그 산을 옮겨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이 때문에 그 골짜기를 우공의 골짜기라고 한 것이다. <列子 湯問>

우곡[紆曲] 모퉁이 굽은 구석을 이른다.

우곡[愚谷] 우공곡(愚公谷)을 이른다.

우공[寓公]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 우거하는 임금을 가리킨 말이다.

우공[优工] 옛날 악무와 농담을 업으로 삼던 예술인들의 통칭이다.

우공[禹貢] ()는 자기 거처하는 집도 낮게 음식과 의복도 박하게 하여 검소를 본분으로 하였으나 그가 우공(禹貢)에서 지방 조세를 정하면서 태산 골짜기의 토산물로는 명주실모시괴석을 그 지방 공물(貢物)로 정하였다. <書經 禹貢>

우공[禹貢] 우공은 중국 국토를 아홉 주로 나누어 각 구역의 산천 분포와 교통, 물산의 상황이며 공부(貢賦)등급에 관한 것까지 기술한 상서(尙書) 하서(夏書)의 편명으로, 중국의 국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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