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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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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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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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尉文] 실전 되었지만 읍 이름이라는 설과 사람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위문이라는 고을에 봉했다는 설과 위문(尉文)이라는 사람의 봉읍을 염파에 주었다는 설이다.

위문[䦱門] 침문(寢門)을 반쯤만 여는 것을 이른다. 춘추 시대 노() 나라 공보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는 계강자(季康子)의 종조숙모(從祖叔母)였는데, 계강자가 찾아가면 그녀가 침문을 반쯤만 열고서 그와 얘기를 나누고 서로 문턱을 넘지 않았던 데서 온 말로, 남녀간의 분별이 엄절했음을 의미한다. <國語 魯語>

위문후[魏文侯]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45년에 즉위하여 396년에 죽은 위나라 군주로 이름은 사(). 기원전 445년에 즉위해서 49년 간 재위했다. 복자하(卜子夏),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 등에게서 사사했으며 현인과 재사들을 초빙하여 기용했다. 그의 치세 기간 중 이룩한 업적은 다음과 같다. 오자병법으로 유명한 오기(吳起)를 기용하여 황하 이서와 낙수 이동의 땅을 점령하고 하서군을 설치 진나라의 서진을 막았다. 악양(樂陽)을 기용하여 조나라 영토 너머 있던 중산국(中山國)을 정벌하여 위나라령으로 했다. 서문표(西門豹)를 업()의 태수로 임명하여 하백을 팔아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있던 무당과 관리들을 치죄하여 미신을 타파했다. 서문표가 백성들을 잘 다스려 그 땅에 대규모의 관개시설을 건설하자 농산물의 생산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여 업 땅에 치세가 오도록 했다. 이극(李克)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구습을 타파하고 개혁을 단행했다. 이극이 시행한 주요 정책으로써 진지력지교(盡地力之敎)라는 제도를 시행하여 토지생산력을 제고시켰다. 진지력지교란 토지의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규정이다. 법경(法經)을 제정하여 시행함으로 해서 백성들은 법의 보호를 받고 생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평적법(平糴法)을 시행하여 물가의 안정을 꾀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평적법이라는 풍년이 들 때 국가가 사들였다가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에게 싼 값으로 공급하는 제도다. 귀족들의 특권이 세습되는 것을 폐지하고 식유로(食有勞), 록유공(祿有功), 상유현(賞有賢), 벌필당(罰必當)’ 정책을 단행했다. 일하는 자에게만 먹을 것을 주고, 공을 세운자에게만 봉급을 주며,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상을 내리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준다.’라는 뜻이다. 무졸제(武卒制)를 시행하여 상비군(常備軍)을 창설하여 여러 번에 걸쳐 진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진나라 령의 서하를 점령하여 그 땅에 서하군(西河郡)과 상군(上郡)을 설치했다.

위미[危微]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말한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얻는다.[人心惟危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위미정일[危微精一] ()이 우()에게 왕위를 전해 줄 때에 경계하기를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묘[]하니, 정일(精一)히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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