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사[衛司] 익위사(翊衛司)의 약칭이다.

위산휴재궤[爲山虧在簣]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끝을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여오(旅獒)아홉 길[九仞]의 산을 만드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공이 무너진다.[爲山九仞 功虧一簣]”고 하였다. 즉 한 삼태기만 모자라도 9()의 산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위상[魏相] 위상은 제음(濟陰) 정도(定陶)사람으로 자는 약옹(弱翁)인데, 한 나라 선제(宣帝) 때 승상이 되어 병길과 함께 마음을 합쳐 국정을 보좌하였다.

위상[魏尙] 위상은 한()나라 괴리(槐里) 사람으로 문제(文帝) 때 운중 태수(雲中太守)로 있으면서 개인 재산을 털어 군사들을 보살피고 흉노(匈奴)의 침입을 저지하는 등 정사를 잘하였으나, 조정에 전적을 보고하는 문서에 적군의 수급을 벤 숫자가 6명이 틀리다는 이유로 벼슬을 삭탈하고 1년간의 도형(徒刑)에 처해졌다가 풍당(馮唐)의 간청으로 풀려나 다시 운중 태수가 되었다. <史記 卷一百二 馮唐傳>

위상양응[渭上揚鷹] 주 나라 문왕(文王)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얻었는데, 뒷날 목야(牧野)에서 주()와 싸울 때 여상이 매처럼 날쳤다. <詩經 大雅 大明>

위서[魏書] 중국 정사(正史)의 하나. 북위(北魏) 일대(一代)의 기록. 북제(北齊)의 위수(魏收)가 칙명을 받아 찬술하였으며, 554년에 완성되었다. 제기(帝紀) 12, 열전(列傳) 92, () 10, () 130권이다. 그 자료로는 위대(魏代)의 기거주(起居注), 국사(國史) 외에 여러 가문의 보상(譜狀)과 구기구문(舊記舊聞)을 이용했으나, 완성된 후 기술이 부실불공평한 것에 대한 비난이 많아 예사(穢史)라 불리었다. 위수는 뇌물이나 개인 감정에 의해 곡필(曲筆)했다고 북사(北史) 및 기타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위서의 기술을 동시대의 다른 역사서와 대비, 검토하면 북제(北齊)의 황실 고씨(高氏) 및 그 일족에 대해 직필(直筆)을 피하고 있는 점 외에 곡필이라 단정내릴 것이 거의 없다.

위석[熨石] 불에 구워 몸에 품고 자는 다리미처럼 생긴 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