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書有感 二首[관서유감 2] 책을 보다 느낀바가 있어

 

- 朱熹[주희] -

 

<其一>

半畝方塘一鑑開[반무방당일감개] 모난 작은 연못 거울이여라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 구름빛 함께 노니네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묻노니 어쩌면 그리 맑은가

爲有源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퐁퐁 솟아나는 샘 있어라네

 

<其二>

昨夜江邊春水生[작야강변춘수생] 어젯밤 강가에 봄물이 불어

蒙衝巨艦一毛輕[몽충거함일모경] 거대한 전함도 깃털 같아라

向來枉費推移力[향래왕비추이력] 줄곧 옮기려도 못 옮겼는데

此日中流自在行[차일중류자재행] 이제 강복판에 잘도 떠가네

 


주희[朱熹] 주자(朱子). 남송(南宋)의 저명한 이학가(理學家), 사상사, 철학가, 교육가 및 시인이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산인(雲谷山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이 있다. 휘주(徽州) 무원(婺源: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무원현婺源縣) 사람이다. 태어난 곳은 연평(延平: 지금의 복건성福建省에 속함)이다. 부친 사후 불교와 노자를 배웠으나 24세 때 이통(李侗)을 만나 유학으로 복귀한다. 학문을 토론하는 친구로는 장남헌(張南軒), 여동래(呂東萊)가 있고, 논적으로는 육상산(陸象山)이 있었는데 이들과 상호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비약적으로 심화·발전시켰다. 유학(儒學)의 선배 정호(程顥), 정이(程頤)의 학문을 계승하여, 한대(韓代)와 당대(唐代)에 성행하였던 훈고(訓詁) 학풍에서 떨어져 새로운 철학 체계를 세워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한 그의 학문을 주자학(朱子學) 또는 송학(宋學)이라 일컫는다.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뒤에 71세에 생애를 마칠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약 9년 정도만 현직에 있었을 뿐, 그 밖의 관직은 학자에 대한 일종의 예우로서 반드시 현지에 부임할 필요가 없는 명목상의 관직이었다.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재건하고 도학(道學)을 선양했다. 사후 1209년과 1230년 두 차례 시호가 내려졌고, 1241년에는 그의 위패가 정식으로 공자사당에 모셔졌다. 저서로는 논어요의(論語要義), 논어훈몽구의(論語訓蒙口義), 곤학공문편(困學恐聞編), 정씨유서(程氏遺書), 논맹정의(論孟精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팔조명신언행록(八朝名臣言行錄), 서명해의(西銘解義),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근사록(近思錄),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 주역본의(周易本義) 등이 있다. 그의 글은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으로 편찬되었고,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할 때 남긴 말들은 주자어류(朱子語類)로 편찬되었다.

관서[觀書]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음.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글을 읽음. 묵독(默讀).

원두[源頭] 수원(水源). 발원지. 원천. 근원.

활수[活水] 흐르거나 솟아올라 움직이는 물.

몽충[蒙衝] 고대의 전함(戰艦) 이름이다. 배가 좁고 길어 적선에 돌입해서 충돌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겉을 생우피(生牛皮)로 덮고 좌우에 활 쏘는 구멍이 있었다.

왕비[枉費] 낭비하다. 허비하다.

차일[此日] 바로 앞에서 말하였거나 생각한 날. 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