淮上與友人別[회상여우인별] 회수가에서 벗과 이별하다

 

- 鄭谷[정곡] -

 

揚子江頭楊柳春[양자강두양류춘] 양자강 나루에 버들은 봄빛인데

楊花愁殺渡江人[양화수도강인] 버들개지 날려 강 건너기 시름겹네

數聲風笛離亭晩[수성풍적리정만] 바람결 피리 소리 이정은 저무는데

君向瀟湘我向秦[군향소상아향진] 그대는 소상으로 나는 장안으로 가네

 


정곡[鄭谷] 만당(晩唐)의 저명한 시인(詩人)으로 자()는 수우(守愚), 한족(漢族)으로 원주(袁州) 의춘(宜春: 지금의 강서江西 의춘宜春) 사람이다. 부친인 정사(鄭史)는 영주자사(永州刺史)를 지냈다. 일곱 살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당 희종(唐僖宗) 광계(光啓) 3(887)에 진사가 되었고, 우습유(右拾遺)와 도관낭중(都官郎中)을 지냈으므로 사람들이 정도관(鄭都官)이라 불렀다. 허당(許棠), 장교(張喬), 임도(任濤) 등 아홉 사람과 서로 시를 주고받아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방림십철(芳林十哲)이라고 불렀는데, 자고새로 부를 지어 경책의 말을 전한 자고시(鷓鴣詩)로 명성을 얻어 사람들이 정자고(鄭鷓鴣)라고 불렀다. , 벼슬에서 물러나 앙산(仰山)에 은거하고 있을 때, 시승(詩僧) 제기(齊己)가 조매(早梅)라는 시를 가지고 와 가르침을 청하니 앞마을은 깊은 눈 속인데, 지난 밤 몇 가지 매화꽃이 피었네.[前村深雪裡 昨夜數枝開]”라는 구절 중 몇 가지[數枝]’한 가지[一枝]’로 고치게 하자 제기가 절을 하였다하여, 이후 사람들이 정곡을 일자지사(一字之師)로 불렀다고 한다. 만년에 의춘(宜春)의 앙산서옥(仰山書屋)으로 돌아가 북암(北岩) 별서(別墅)에서 죽었다. 시집으로 운대편(雲臺編)이 전하는데 건령(乾寧) 3(896), 소종(昭宗)이 난을 피해 화주(華州)로 갔을 때, 그도 화주로 부임하여 운대도사(雲臺道舍)란 곳에서 지낸 적이 있어서 제목을 운대편(雲臺編)이라 하였다 한다.

회상[淮上] 양주(揚州). 회수(淮水)의 물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회양(淮陽) 일대이다. 회수(淮水)는 하남성에서 발원하여 안휘성을 지나 강소성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중국 셋째의 큰 강이다.

양자강[揚子江] 양주부(揚州府) 의진현(儀眞縣) 남쪽에 있다. 티베트 고원의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통주(通州)와 태주(泰州) 2주를 지나 동중국해로 흘러 들어간다. 당대(唐代)에 양자진(揚子津) 포구에 양자현(揚子縣)을 설치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대강(大江: 즉 장강)을 양자강이라 불렀다. 바로 지금의 강소성 강도(江都)와 단도(丹徒) 사이를 흐르는 대강을 가리킨다. 이후에는 흔히 장강(長江)이라 불린다. 옛날 위 문제(魏文帝)가 광릉(廣陵)에 이르러 군대의 위력을 과시할 때 강의 파도가 세찬 모습을 보고 아아! 본래부터 하늘이 남북을 갈랐도다라고 하였다. 강의 맨 중앙을 남랭수(南泠水)라 한다.

강두[江頭] 강가의 나룻배 타는 곳. 강가의 나루 근처. 강기슭. 강가.

양류[楊柳] 버드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 높이는 10m 이상이고 잎은 길고 둥글며, 가에 톱니가 있고 끝이 뾰족함. 가지는 가늘고 길게 죽죽 뻗고 4월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이것을 버들개지라 함. 개울가나 들에 잘 자람.

수쇄[愁殺] 시름겹다. 몹시 슬프게 하거나 시름에 잠기게 함. 깊이 슬퍼함. ()는 뜻을 강조하는 조자(助字)이다.

풍적[風笛] 바람속의 피리소리. 바람결에 들리는 피리소리.

이정[離亭] 역참의 정자. 이별(離別)의 주연(酒宴)을 베푼 좌석(座席). 길을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자리. 이정은 길가의 역정(驛亭)이다. 옛날 성곽(城郭) 밖의 길가에 세웠던, 행인(行人)이 잠시 휴식할 만한 정자(亭子)를 말하는데, 옛사람들이 모두 여기에서 서로 송별을 하였으므로, 전하여 길 떠나는 사람에 대한 송별의 자리를 의미한다.

소상[瀟湘]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 부근에는 경치(景致)가 아름다운 소상(瀟湘) 팔경이 있다.

[] ()은 장안(長安) 부근을 이른다. 옛날 진()나라 서울(咸陽)이 있었기 때문에 ()이라 부른다. 지금의 섬서성(陜西省) 경내(境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