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發揚子寄元大校書[초발양자기원대교서] 양자진을 떠나며 원대에게

 

- 韋應物[위응물] -

 

悽悽去親愛[처처거친애] 서글피 친애하는 그대를 떠나

泛泛入煙霧[범범입연무] 둥둥 떠 물안개 속으로 드네

歸棹洛陽人[귀도낙양인] 노 저어 낙양으로 돌아가는 이

殘鐘廣陵樹[잔종광릉수] 광릉 숲에 걸린 새벽종 여운

今朝此爲別[금조차위별] 오늘 아침 이렇게 헤어져서는

何處還相遇[하처환상우] 어느 곳에 우리 다시 만나랴

世事波上舟[세사파상주] 세상사 물결 위의 배와 같으니

沿洄安得住[연회안득주] 오르락내리락 어디에서 머물랴

 

初發揚子寄元大校書초발양자기원대교서 : 양자진을 떠나며 교서랑 원대에게 부치다.

 


위응물[韋應物] () 나라 때의 시인으로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서안西安) 사람이다. 천보(天寶) 10(751) 음서(蔭敍)로 삼위랑(三衛郞)이 되었다. 젊어서 임협(任俠)을 좋아하여 현종(玄宗)의 경호책임자가 되어 총애를 받았다. 안사의 난[安史之亂]을 겪고 현종(玄宗)이 세상을 뜬 뒤에는 독서에 전념했다. 정원(貞元) 6(790)에 소주자사(蘇州刺史)를 끝으로 만년에는 소주성 밖에 있는 영정사(永定寺)에서 지냈다. 그의 시()는 전원산림(田園山林)의 고요한 정취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세상에서 도연명(陶淵明)에 비겨 도위(陶韋)라고 일컬었으며, 또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유종원(柳宗元)에 배합하여 왕맹위유(王孟韋柳)라고도 불렀다. 저주(滁州)와 강주(江州), 소주(蘇州)에서 자사(刺史)를 지냈고, 좌사낭중(左司郎中)을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위강주(韋江州), 위좌사(韋左司), 위소주(韋蘇州)라고도 불렀다. 위강주집(韋江州集) 10, 위소주시집(韋蘇州詩集) 2, 위소주집(韋蘇州集) 10권이 전한다.

양자[揚子] 장강(長江) 북안(北岸)에 있는 양자진(揚子津)을 말한다. 강소성(江蘇省) 양주(揚州) 남쪽에 있다.

원대[元大] 원대(元大)는 원씨(元氏) 문중의 항렬이 첫 번째인 사람인데,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교서랑(校書郞)을 지낸 원결(元結)이라는 설도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교서[校書] 관명(官名)으로 당대(唐代)교서랑(校書郞)을 이른다. 서적(書籍)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처처[悽悽] 마음이 매우 구슬픔. 서글프고 가슴이 저림. 굶주리고 병듦. 입은 은혜를 갚으려고 마음먹는 모양. 마음의 안정을 잃은 모양.

친애[親愛] 친밀히 사랑함. 친밀감을 가지고 소중히 여기는 것.

연무[煙霧] 연기와 안개를 아울러 이르는 말.

[洛陽] 낙양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이다.

광릉[廣陵] 옛날 초()나라의 도읍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중국 강소성(江蘇省) 양주(揚州)의 옛 명칭이다.

연회[沿洄]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다. 물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沿()’이라 하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라 한다. 이백(李白)의 시 회음서회기왕종성(淮陰書懷寄王宗成)물결 따라 오르고 내려 정처가 없으니, 홀연히 슬프게 떠나갈 뿐[沿洄且不定 飄忽悵徂征]”이라는 구절이 있다.

안득[安得] 어디에서 ~을 얻으랴. 어찌 ~일 수 있으랴. 어떻게 ~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