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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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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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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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夜獨坐懷內弟崔興宗[추야독좌회내제최흥종] 가을밤 외사촌 동생을 생각하며

 

- 王維[왕유] -

 

夜靜群動息[야정군동식] 밤이 고요하니 뭇 움직임 멈췄는데

蟪蛄聲悠悠[혜고성유유] 쓰르라미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네

庭槐北風響[정괴북풍향] 마당의 회화나무 구멍에 북풍 울고

日夕方高秋[일석방고추] 아침저녁 바야흐로 한가을로 가누나

思子整羽翰[사자정우한] 그대를 생각건대 날개 가다듬었다가

及時當雲浮[급시당운부] 때 되면 구름 위로 올라야만 하리라

吾生將白首[오생장백수] 나의 인생이야 백발을 향해 가니

歲晏思滄州[세안사창주] 만년에 은거할 데나 생각한다지만

高足在旦暮[고족재단모] 그대는 출세할 날 조만간 있을진대

肯爲南畝儔[긍위남무주] 어찌 전원에 묻힌 무리 되려 하는가



왕유[王維] 성당(盛唐)의 대표적 시인.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의 최고 시인이었다. 산서성(山西省) 기현인(祁縣人)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서화와 음악에 모두 조예가 깊었다. 중국 자연시인의 대표로 꼽히며 남종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만년에 장안의 남쪽 남전현(藍田縣)에 있는 망천(輞川) 별장에 은거하며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거사적 삶을 살았다. 그의 시는 명정청신(明淨淸新)하고 정미아치(精美雅致)하며 초속탈진(超俗脫塵)하다. 객관적이고 고요한 서경(敍景)뿐만 아니라 송별시·궁정시 분야에서도 뛰어났다. 이백(李白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의 대시인이었고,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로 칭하며 불교에 심취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일컬어진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을 때 죽었기 때문에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소식(蘇軾)은 당대(唐代) 산수전원시파(山水田園詩派)를 대표하는 그에 대해 마힐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고 하였다. 산수시(山水詩)에서 큰 성취를 보여 맹호연(孟浩然)과 병칭하여 왕맹(王孟)이라 일컬어진다. 저서로 왕우승집(王右丞集) 10권이 있다. 구당서(舊唐書) 왕유전(王維傳)왕유는 형제가 모두 부처를 받들었고, 언제나 채식을 했으며 매운 것과 육식을 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오랫동안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살았으며 무늬나 색깔 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維兄弟俱奉佛, 居常蔬食, 不茹葷血, 晩年長齋, 不衣紋彩.]”고 기록되어 있다.

내제[內弟] 외종(外從) 아우. 곧 외사촌 동생을 이른다. 일반적으로 고모(姑母)의 아들을 내종(內從), 외숙(外叔)의 아들을 외종(外從)이라 하나 예전에는 자기 집에서 밖으로 나간 것을 외()라 하여 고모의 아들을 외() 또는 표()라 하고, 자기 집으로 시집온 어머니의 친정을 내()라 하였다.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정현(鄭玄) ()고모의 자녀는 외형제(外兄弟), 외숙의 자녀는 내형제(內兄弟)이다[姑之子, 外兄弟也, 舅之子, 內兄弟也.]”라고 하였다. ()의 소()외형제란 고모는 본시 집 안 사람인데 밖으로 출가하여 낳았으므로 외형제라고 한다. 내형제란 고모의 자녀에 상대해서 말하는 것이니, 외숙의 자녀는 본디 집 안에 있으면서 나가지 않았으므로 내()라고 이름했다[外兄弟者, 姑是內人, 以出外而生, 故曰外兄弟. 內兄弟者, 對姑之子, 舅之子, 本在內不出, 故得內名也.]”라고 하였다. <常變通攷 居家雜儀>

내제[內弟] 아내의 남동생. , 손아래의 처남(妻男)을 이른다. 내제(內弟)의 내()는 내자(內子: 안사람)의 의미로서 남에게 대하여 자신의 아내를 일컫는 말인데, 내제는 내자의 남자동생이란 의미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종제(內從弟)의 약칭으로 보인다. 참고로 왕유의 어머니가 최씨(崔氏)이다. 내종(內從)은 내사촌(內四寸)을 가리키는데, 이 역시 일반적으로 고모(姑母)의 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는 외숙(外叔)의 아들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며느리(어머니)는 우리 집안으로 시집왔다 하여 내()라 하고, 딸은 남의 집으로 시집갔다 하여 외()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딸의 자식을 외손(外孫)이라 하는 것이다.

최흥종[崔興宗] () 나라 때의 시인으로 왕맹시파(王孟詩派) 중 한 사람이며, 박릉(博陵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정주定州) 사람이다. 일찍이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며 왕유(王維), 노상(盧象), 배적(裴迪) 등과 많은 시를 주고받으며 어울렸다. 벼슬은 요주장사(饒州長史)를 지냈다. 전당시(全唐詩)에 유별왕유(留別王維) 5수가 실려 있다. 왕유(王維)는 송최구흥종유촉(送崔九興宗遊蜀), 송최흥종(送崔興宗), 최흥종사진영(崔興宗寫真詠), 여노원외상과최처사흥종림정(與盧員外象過崔處士興宗林亭), 동최흥종송형악원공남귀(同崔興宗送衡嶽瑗公南歸), 추야독좌회내제최흥종(秋夜獨坐懷內弟崔興宗) 등의 시를 최흥종(崔興宗)에게 남겼고, 최흥종(崔興宗)은 화왕유칙사백관앵도(和王維敕賜百官櫻桃), 수왕유로상견과임정(酬王維盧象見過林亭), 유별왕유(留別王維) 등의 시를 왕유(王維)에게 남겼다. 청작가(青雀歌)란 제목의 시를 왕유(王維), 왕진(王縉), 배적(裵迪), 최흥종(崔興宗)이 서로 주고받았다.

군동[群動] 각종 동물. 여러 가지 활동. 모든 생물. 많은 사람들. 도잠(陶潛)의 시 음주(飮酒)에는 해가 지면 온갖 짐승 쉴 자리 들고, 새들은 숲으로 돌아가며 소리 내서 운다[日入群動息 歸鳥趨林鳴]”라고 읊었고, 백거이(白居易)의 시 안좌한음(晏坐閑吟)에서는 만물이 약동해도 하고 싶은 게 별로 없고, 흐르는 세월 속에 몸뚱이만 달라지네[意氣銷磨群動裏 形骸變化百年中]”라고 읊었다.

혜고[蟪蛄] 쓰르라미. 매미의 일종. 이백(李白)의 시 의고(擬古)매미는 소나무에 붙어 울지만, 어떻게 소나무 늙는 걸 볼 수 있으리[蟪蛄啼靑松 安見此樹老]”라고 하였고,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하루살이 버섯은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라는 내용이 있다. 혜고(蟪蛄)는 여름 한 철만 살기 때문에 짧은 수명을 비유할 때 쓴다.

유유[悠悠] 길고 오래다. 때가 오래다. 계속해서. 오랫동안. 시간이 매우 길고 오래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장한가(長恨歌)생사가 갈린 지 몇 해이던가, 혼백마저 꿈 속에서 만날 수 없네[悠悠生死別經年 魂魄不曾來入夢]”라고 하였다.

일석[日夕] 저녁.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조석(朝夕). 밤낮. 주야.

고추[高秋] 늦가을. 만추. 하늘이 맑고 높은 날씨가 상쾌한 가을철. 심약(沈約)의 시 휴목기회(休沐寄懷)연못 앞 거닐면서 더위 식히고, 휘장을 걷고서 높은 하늘 바라보네[臨池淸溽暑 開幌望高秋]”라고 하였다.

우한[羽翰] 날개.

우핵[羽翮] 깃털과 깃촉. 곧 새의 날개를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 獨坐(獨坐)황혼에 날아드는 저 새가 부럽구나, 날개도 가볍게 숲으로 들어가네[仰羨黃昏鳥 投林羽翮輕]”라고 하였고, 다른 시 장유(壯遊)에서는 나는 병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 뜻을 펴지 못하나니, 날개 저어감이 어려워라[鬱鬱苦不展 羽翮困低昻]”라고 하였다.

운부[雲浮] 구름 위 공중으로 날아오르다. 구름 사이를 떠돌다.

세안[歲晏] 세밑. 연말(年末). 세모(歲暮). 한 해가 다 되어가는 시기. 노년(老年). 사람의 만년(晩年). 백거이(白居易)의 시 관예맥(觀刈麥)삼백 석 녹을 받는 관리 되었으니, 한 해 끝에서도 여유를 가질 만하네[吏祿三百石 歲晏有餘粮]”라고 하였다.

창주[滄洲] 창랑(滄浪)의 주(). 강호(江湖). 본디 물가에 접한 곳을 가리키지만 흔히 은사(隱士)의 거소(居所)라는 뜻으로 쓰이는 데서, 전하여 은거(隱居)를 뜻한다. 창주(蒼州)로도 쓴다. 두보(杜甫)의 시 곡강대주(曲江對酒)벼슬아치 속내를 알고도 귀향의 길은 멀고, 늙은 몸만 슬퍼할 뿐 못 떠나고 있네[吏情更覺滄洲遠 老大悲()傷未拂衣]”라고 하였다. 지명이기도 하다.

창주[滄洲] 경치 좋은 물가로, 물가에 있는 은사(隱士)의 거처를 비유할 때에 쓰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완적(阮籍)이 지은 정충을 위하여 진왕에게 보낸 글[위정충권진왕전爲鄭沖勸晉王箋]’창주에 임하여 지백에게 사례하고, 기산에 올라 허유에게 읍을 한다[臨滄洲而謝支伯 登箕山以揖許由]”고 하였다. 이후에 경치가 수려한 곳, 혹은 경치 좋은 은자(隱者)의 거처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게 되었다. <文選 卷40 為鄭沖勸晉王箋>

창주[滄洲] 창주는 원래 물가의 경치 좋은 곳, 해변가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하지만 신선이 사는 섬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조(南朝) 시대 제()나라의 시인 사조(謝朓)가 선성태수(宣城太守)로 부임하여 창주의 풍류를 즐겼다는 고사에서 기인하여, 당시(唐詩)에서 강남(江南)의 유벽(幽僻)한 주군(州郡)을 가리킬 때 곧잘 쓰는 표현이 되었다.

창주[滄洲] 주자(朱子: 주희朱熹)가 강학(講學)하였다는 창주정사(滄洲精舍: 창주서원滄洲書院)를 가리킨다. 주자(朱子)는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 고정(考亭)에 서실(書室)을 지어 죽림정사(竹林精舍)라 하였는데, 뒤에 이름을 바꾸어 창주정사(滄洲精舍)라고 부르고, 자신을 창주병수(滄洲病叟)라 별호하였다. 주희는 이곳으로 모여드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학문을 연마하였는데, 세상에서 그들을 일러 고정학파(考亭學派)라고 하였다. <朱子年譜><福建通志>

고족[高足] 발을 높이 올려놓음. , 입신출세, 현달함을 비유한다.

고족[高足] 제자들 가운데서 학식과 품행이 특히 뛰어난 제자. 남의 제자에 대한 미칭. 고족제자(高足弟子). 재능을 갖춘 인재. 품학(品學)이 넉넉한 문인(門人). 좋은 말. 장구령(張九齡)의 시 고재한망언회(高齋閑望言懷)길 나섰으나 잘 달리는 말이 없어, 물 따라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네[取路無高足 隨波適下流]”라고 하였다.

고족제자[高足弟子] 품행(品行)과 학식(學識)이 우수(優秀)한 제자(弟子). 제자들 가운데서 학식과 품행이 특히 뛰어난 제자. 주로 유교나 불교에서 학문이나 덕행이 뛰어난 제자를 이른다. 고족(高足). 고제(高弟). 세설(世說) 문학(文學)정현은 마융의 문하에 있으면서 3년간 서로 만날 수가 없었다. 다만, 고제자(高弟子)가 학문을 전수해줄 뿐이었다[鄭玄在馬融門下 三年不得相見 高足弟子傳授而已]”라고 하였다. 고제자(高弟子).

단모[旦暮] 아침저녁. 낮과 밤. 조만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긍위[肯爲] 기꺼이 ~하다.

남무[南畝] 남묘. 남향의 논밭. 농작물이 잘 자라는 양지 바른 농토를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전(大田)나의 날카로운 보습으로, 남녘 두렁에 일을 시작하여, 백곡의 씨를 뿌린다[以我覃耜 俶載南畝 播厥百穀]”라는 말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농토 또는 전지를 뜻하는 말로 흔히 전원을 통칭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남묘[南畝] 남무. 농전(農田), 전지(田地), 곧 농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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