渡漢江[도한강] 한강을 건너며

 

- 宋之問[송지문], 李頻[이빈] -

 

嶺外音書斷[영외음서단] 산 너머 소식이 끊어진 채로 [/]

經冬復歷春[경동부력춘] 겨울 지나고 다시 봄도 지났네

近鄕情更怯[근향정경겁] 고향 가까울수록 더 두려운 마음

不敢問來人[불감문래인오는 사람에게 소식도 묻지 못하네

 

<渡漢江도한강 / 한강을 건너며 / 宋之問송지문, 李頻이빈>

 

전당시(全唐詩) ()53에는 이 시가 당()나라 송지문(宋之問)의 시로 되어 있으나,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에는 이 시가 당()나라 이빈(李頻)의 시로 수록되어 있다.


한강[漢江] 한수(漢水)이다. 장강(長江)의 가장 긴 지류(支流), 섬서(陝西)에서 발원(發源)하여 호북(湖北)을 거쳐 무한(武漢)에 이르러 장강(長江)으로 유입(流入)된다.

송지문[宋之問] 초당(初唐)의 시인으로 자는 연청(延淸)이었고 소련(少連)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괵주(㶁州) 홍농(弘農) 사람(분주汾州 사람이라고 한다)으로, 유희이(劉希夷)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상원(上元) 2(675)에 진사시험에 급제하였고, 20세경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눈에 들어 습예관(習藝館) 상문감승(尙文監丞)이 되었다. 그 후, 무후의 영신(佞臣) 장역지(張易之)에게 아첨하다가 지방으로 쫓겨났는데, 다시 돌아오자 역시 당시의 권력자 무삼사(武三思)에게 아첨하여 관직을 차지하는 등 파렴치한 행실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재주를 아끼고 사랑하던 중종(中宗)은 그를 수문관(修文館) 직학사(直學士)로 기용, 문학의 좋은 상대로 삼아, 군신(君臣)의 신분을 망각한 주연(酒宴)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 후에 현종(玄宗)이 즉위하자 영신을 추종하였다는 죄로 광동성(廣東省) 흠현(欽縣)으로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심전기(沈佺期)와 함께 측천무후와 중종의 궁정시인으로, 연석(宴席)에서 시작(詩作)을 다투어 심송(沈宋)이라 불렸다.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는데, 율시체(律詩體) 정비에 진력하여 심전기·두심언(杜審言) 등과 더불어 초당 후반의 문단에서 율시 유행의 선구로 공이 컸다. 문집에 송지문집(宋之問集)이 있다. 조카인 유희이의 해마다 꽃들은 비슷하게 피지만, 해마다 사람은 전과 같지 않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는 시구를 몹시 탐내어, 조카를 흙을 담은 포대로 압사시켰다는 이야기가 위현(韋絢)의 빈객가화록(賓客嘉話錄)에 전한다.

[李頻] ()는 덕신(德新)이며 목주(睦州) 수창(壽昌: 지금의 浙江省절강성 建德縣건덕현) 사람이다. 대중(大中) 8(854)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교서랑(校書郞시어사(侍御史) 등을 지냈으며, 훗날 건주자사(建州刺史: 지금의 福建省복건성 建甌縣건구현)가 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저서에 이건주자사집(李建州刺史集)이 있으며, 당재자전( 唐才子傳)에 소전(小傳)이 있다.

[嶺外] 이 시에서 영남(嶺南)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광동(廣東광서(廣西) 일대를 포함한다.

음서[音書] 편지. 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