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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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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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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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歸故園[초귀고원] 처음 고향에 돌아오니

 

- 崔惟淸[최유청] -

 

里閭蕭索人多換[이려소삭인다환] 쓸쓸한 고향이라 거개가 모르겠고

墻屋傾頹草半荒[장옥경퇴초반황] 담벼락은 무너져 잡초만 무성하네

唯有門前石井水[유유문전석정수] 오직 문 앞에 남은 돌우물 물만이

依然不改舊甘涼[의연불개구감량] 전이나 다름없이 달고 시원하네

 

<初歸故園초귀고원 / 갓 고향에 돌아오니 / 崔惟淸최유청 : 東文選동문선>

 


최유청[崔惟淸] 고려(高麗) 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는 직재(直哉)이고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문하시랑 최석(崔奭, 崔錫)의 아들이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학문이 완성되지 않았다 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독서에만 힘썼다. 후에 추천을 받아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나 인종초에 이자겸(李資謙)의 간계로 파직되었다. 이자겸이 몰락한 뒤 내시(內侍)가 되었고, 좌사간(左司諫상주수(尙州守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하였다. 1132(인종10)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으로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송나라에 다녀왔다. 1142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로 금나라에 다녀와 호부시랑(戶部侍郎)에 제수되었고,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승선(承宣)을 역임하였다. 1149(의종3)에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가 되고, 2년 후 왕제 대령후(大寧侯)가 참소된 사건에 처남인 정서(鄭敍)와 함께 관련되어 남경유수사(南京留守使)로 좌천되고, 6년 뒤 충주목사(忠州牧使),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좌천되었다. 1161(의종15)에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정중부의 난 때 다른 문신은 모두 화를 입었으나 평소 그의 덕망에 감화한 무신들이 그를 보호하여 화를 면했다. 명종이 즉위하자 중서시랑평장사에 다시 임명되었고 이어 수사공집현전대학사판예부사(守司空集賢殿大學士判禮部事)로 치사했다. 경사에 해박했으며, 불경에도 관심이 깊어 많은 학생과 승려의 자문에 응했다. 왕의 조서를 받들어 이한림집주(李翰林集註)을 편찬했고 유문사실(柳文事實)을 주해했다. 문집에 남도집(南都集)이 있으며 동문선(東文選)6수의 시와 45편의 문이 실려 있다. 시호는 문숙(文淑)이다.

고원[故園] 고향(故鄕). ()에 살던 곳.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옛날에 만들어진 뜰.

이려[里閭] 태어나 자란 고향 마을. 향리(鄕里). 이한(里閈). 고향 마을. 마을의 문.

소삭[蕭索] 아주 쓸쓸함. 쓸쓸한 모양. 은 쓸쓸하다는 뜻으로 음은 삭이다. 소조(蕭條).

장옥[墻屋] 장옥(牆屋). 집의 둘레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린 것.

경퇴[傾頹] 낡은 건물 따위가 기울어지고 무너짐. 기울어져 무너지거나 또는 쏠려 넘어짐

유유[唯有] 다만. 오직.

석정[石井] 돌로 쌓은 우물. 돌우물.

의연[依然] 전과 같이 다름없음. 여전하다. 의연하다. 전과 같다. 그대로이다.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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