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 산을 옮기다(愚公移山우공이산)

 

열자5편 탕문5]-

 

태형산과 왕옥산은 둘 다 넓이가 칠백 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었다. 본래 그 두 산은 기주의 남쪽과 하양의 북쪽에 있었다. 이 산 남쪽 기슭에 북산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구십이었다. 그런데 북쪽이 산으로 막혀 있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을 하려면 높은 산을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노인이 하루는 집안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과 힘을 합하여 저 높고 험한 산을 깎아내어 평탄하게 하고, 다니는 길을 곧게 내어 예남 땅에서 직접 한음 땅으로 통하게 하려하는데 어떠냐?”

집안 사람들은 모두 좋은 일이라고 찬성을 하였다. 그러나 우공의 처는 그렇지 않았다.

늙은 당신의 힘으로는 저 낮고 조그만 언덕도 깎아 내리지 못할 것인데, 저 높고 험한 태형산과 왕옥산을 어떻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 뿐 아니라. 그 산에서 파 낸 흙과 돌은 어디에 둘 것입니까?”

그러나 그 집안 사람들은 말했다.

어머니 그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 파낸 흙과 돌은 저 발해가의 넓고 넓은 은토라는 들로 운반하면 됩니다.”

우공은 드디어 그 아들과 손주 세 사람을 데리고 일을 시작하였다. 세 사람은 흙과 돌을 등에 져 나르고 자기는 돌을 쪼아내고 또 흙을 파서 내리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매일 흙과 돌을 삼태기에 담아서 발해가로 운반하였다.

그 이웃집에 한 젊은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외아들인 유복자가 있었다. 그 아들의 나이는 겨우 예닐곱의 어린아이였다. 이 과부는 구십의 노인이 아들과 손주 셋을 데리고 산을 떠 옮기는 것을 보고 자기의 어린 아들을 보내어 도와주게 하였다. 이렇게 계속하여 일을 하는 동안 어느덧 추운 겨울도 지나고 더운 여름이 와서 일년이 걸려서야 비로소 한 차례 갔다 오게 되었다.

이 때 하곡 땅에 사람들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지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우공이 하는 일을 보고 웃으면서 그 일을 말렸다.

당신은 너무 어리석습니다. 당신같이 늙은 몸과 힘으로는 저 산의 풀 한 포기도 뽑아내지 못한 것인데 어떻게 저 산의 굳은 흙과 무거운 돌을 파내겠습니까?”

우공은 이 말을 듣고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사람들은 당신을 지혜 있는 노인이라 말하지만 당신의 생각은 고루합니다. 참으로 철저하지 못합니다. 저 우리 이웃집에 사는 과부댁의 어린 아들 만도 못합니다. 비록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내가 못다 한 일을 내 아들이 하고, 내 아들이 못 다한 일은 내 손주가 하고, 내 손주가 못다한 일은 내 손주의 손주가 해서 자자손손이 몇 해든지 해나가다 보면 제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해도 평탄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괴롭다 불평을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하곡땅의 지혜 있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산을 지키고 있던 조사라는 산신령도 우공의 그칠 줄 모르는 노력에 겁이 나서 이 일을 하느님께 알렸다. 하느님은 우공의 지극한 정성에 감복하였다. 하느님은 신통한 능력이 있는 과아씨의 두 아들에게 명령하여 그 태형산과 왕옥산을 각각 등에 지고 가서 하나는 삭동 땅에 놓고, 또 하나는 옹남 땅에 놓게 하였다. 이 때부터 기수 남쪽과 한수 북쪽에는 아무 장애가 없게 되어 사람들이 편히 내왕하게 되었다.

 

列子5篇 湯問5]-

太形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仞.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北山愚公者, 年且九十, 面山而居.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曰: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於漢陰, 可乎?雜然相許. 其妻獻疑曰: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雜曰: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遂率子孫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畚運於渤海之尾. 鄰人京城氏之孀妻, 有遺男, 始齔, 跳往助之. 寒暑易節, 始一反焉. 河曲智叟笑而止之曰. 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北山愚公長息曰: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匱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河曲智叟亡以應. 操蛇之神聞之, 懼其不已也, 告之於帝. 帝感其誠, 命夸蛾氏二子負二山, 一厝朔東, 一厝雍南. 自此冀之南, 漢之陰, 無隴斷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