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능가호[威能假虎] 여우가 범을 꾀어 제 뒤에 따르게 하고 앞장서서 나가매 뭇 짐승들이 달아나는지라, 범이 짐승들이 저를 무서워하는 줄을 모르고 여우를 무서워하는 줄로 믿는다는 이야기. 윗사람의 위엄을 빌어 남을 공갈함을 비유한 것이다. <戰國策>

위도질어[危途叱馭] 한 원제(漢元帝) 때 왕존(王尊)이 익주자사(益州刺史)로 관할 지방을 순시하던 중 험난하기로 이름난 공래(邛郲)의 구절판(九折坂)에 당도하여 전임 자사로 있었던 왕양(王陽)이 죽을까 무서워 그만 되돌아갔던 일을 상기하면서 그의 마부를 꾸짖기를 말을 계속 몰아라. 왕양은 효자였지만 왕존은 충신이니라.”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漢書 卷七十六 王尊傳>

위두[韋杜] 당 나라 때 장안성 남쪽에 위곡(韋曲)과 두곡(杜曲)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망족(望族)이었던 위씨(韋氏)와 두씨(杜氏)가 이곳에서 대대로 살았으므로 세상에서는 이들을 위두(韋杜)라고 불렀다. 이곳은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당시에 유람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위두[韋杜] 당 나라 때에 대대로 귀현(貴顯)했던 위씨와 두씨의 두 망족(望族)을 가리킨 말이다.

위려마도[爲礪磨刀] 숫돌을 위해 칼을 감. 주객(主客)이 전도됨을 이른다.

위례성[慰禮城] 백제(百濟)가 웅진(熊津)으로 남천(南遷)하기까지 있었던 수도인데, 대체로 남한산(南漢山) 부근이다.

위례성[慰禮城] 직산에 있었다는 백제(百濟) 초기의 국도(國都)이다.

위례성십제[慰禮城十濟] 위례성은 성거산에 있는데 백제 온조왕(溫祚王)이 졸본부여에서 남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하고서 열 사람의 신하로써 보필을 삼고 십제라 일컬었다가 뒤에 백제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