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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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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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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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逶蛇] 깃발이 나부끼는 모양. 길이 구불구불 멀리 이어진 모양. 위이(逶迤).

위이[委移] 침착하고 서두르지 아니한다. 물이 유유히 흘러감을 말한다.

위이불맹[威而不猛] 위엄(威嚴)은 있으나 결코 난폭하지 않음을 말한다.

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증자(曾子)가 행한 일일삼성(一日三省) 중 한 가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도모하는 데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가?

위자[魏紫] 아름다운 모란꽃의 종명(種名)이다.

위자요황[魏紫姚黃] 구양수(歐陽脩) 목단보(牡丹譜)전사(錢思)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란(牡丹)은 꽃 중의 왕이다.’하지만, 지금 요씨(姚氏)의 집에 있는 노랑꽃[姚黃]은 참으로 꽃 중의 왕이라 할 만하고 위씨(魏氏)의 집에 있는 자주꽃[魏紫]은 왕후라 할 만하다.’하였다.”했다.

위장[魏章] 전국 때 위()나라 출신으로 진()나라 장군. 처음에는 위나라 장수가 되었다가 장의(張儀)와 함께 진나라로 들어가 서장(庶長)에 임명되어 진혜왕(秦惠王)을 섬겼다. 주난왕(周赧王) 3년 기원전 312년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초나라를 공격했다. 저리질(樗里疾)과 감무(甘茂)의 도움을 받아 초나라의 군사들을 지금의 하남성 단수(丹水)의 북쪽인 단양(丹陽)에서 크게 무찌르고 초장(楚將) 굴개(屈匃)를 사로잡았다. 단양의 싸움에서 승리한 위장은 당시 초나라 령이었던 사방 600리에 달하는 한중(漢中)의 땅을 점령하여 진나라 땅으로 만들고 그 곳에다 한중군(漢中郡)을 설치했다. 같은 해에 다시 란전(蘭田 : 지금의 호북성 종상鍾祥 서북)에서 초나라의 대군을 궤멸시켜 초나라의 전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초나라는 이 두 싸움에서의 패배로 인하여 오랫동안 국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진무왕(秦武王)이 새로 즉위하자 장의와 함께 진나라에서 쫓겨나 위나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죽었다.

위정대부지[危鼎待扶持] 쇠운(衰運)이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직(社稷)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지(扶持)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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