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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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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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揚眉] 양미는 두 눈썹을 갑자기 치켜올리는 것. 선종(禪宗)에서 학인을 제접(提接)할 때 쓰는 일종의 선기(禪機)이다.

양미목격[揚眉目擊] 공자(孔子)가 온백설자(溫伯雪子)를 만나서 말을 하지 않으므로, 자로(子路)가 묻기를 온백설자를 만난 지가 오래인데, 만나서는 말씀이 없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라 하니, 답하기를 이런 사람은 만난 것만으로도 도()가 있는데, 소리를 내어 말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다.

양반아[楊叛兒] 이 노래의 옛 가사는, 남제(南齊) 때 여무(女巫)의 아들 양민(楊旻)이 자기 어미를 따라 궁중(宮中)을 드나들다가 하후(何后)에게 총애를 받은 사실을 기롱한 동요(童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곡명은 양파아(楊婆兒)였는데, 말이 와전되어 양반아가 된 것이라 한다.

양방사[兩牓士] 당나라 양사복(楊嗣復)이 과거에 시관(試官)이 되었을 때에, 마침 그의 아버지 양오릉(楊於陵)이 지방관(地方官)으로 입조(入朝)하였으므로, 급제한 문생(門生)들을 거느리고 나가서 영접하고 그의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오릉은 당상(堂上)에 앉고 사복(嗣復)은 여러 문생과 함께 양편에 앉았었다. 전일에 오릉이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 이사명(李師命)을 급제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 때에 그가 같이 있었다. 사람들이 양씨(楊氏)의 상하 문생(門生)이라 칭하였다.

양백화[楊白華] 의고악부(擬古樂府)이다. 양백화는 악부 잡곡가사(雜曲歌辭)의 하나인데, () 나라 호태후(胡太后)가 명장(名將) 양대안(楊大眼)의 아들 양백화와 가까이 하며 정을 통했는데, 양백화가 후환을 두려워하여 양() 나라에 항복해 가버리므로, 그를 추모하며 노래를 지은 뒤 밤낮으로 궁녀들을 시켜 부르게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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