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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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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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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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聖寺八尺房[개성사팔척방] 개성사 팔척방

 

- 鄭知常[정지상] -

 

百步九折登巑岏[백보구절등찬완] 백 걸음에 아홉 구비 가파른 산 오르니

家在半空唯數閒[가재반공유수한] 반쯤 허공에 걸린 집이 있어 두어 칸

靈泉澄淸寒水落[영천징청한수락] 맑디맑은 신령한 샘 찬 물방울 떨어지고

古壁暗淡蒼苔斑[고벽암담창태반] 칙칙한 묵은 벽엔 푸른 이끼 무늬졌네

石頭松老一片月[석두송로일편월] 바위 끝 솔은 늙어 조각달이 걸려 있고

天末雲低千點山[천말운저천점산] 하늘 끝 구름 아래 점점이 깔린 뭇 산

紅塵萬事不可到[홍진만사불가도] 찌들은 세상만사 이곳에는 못 이르니

幽人獨得長年閑[유인독득장년한] 은자만이 오랜 세월 한가함을 누리누나


기아(箕雅)와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제목이 개성사(開聖寺)로 되어 있다.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천점산(千點山)이 하처산(何處山)으로 되어 있다.


정지상[鄭知常] 서경(西京)인으로 초명은 지원(之元). 호는 남호(南湖)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1112(예종 7)에 과거에 급제하여 1113년에 지방직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1127(인종 5) 좌정언으로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믿고 발호하는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해 유배하도록 하였다. 1129년 좌사간으로 기거랑(起居郎) 윤언이(尹彦頤) 등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소()를 올리니 왕이 받아들였다. 서경출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였다. 그러나 개경 세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개경에서 참살되었다. 정지상은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와 문()에서도 명성을 떨쳐 당대에 김부식(金富軾)과 쌍벽(雙璧)을 이루는 등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지상의 시재(詩才)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야사로 전해올 만큼 뛰어났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 왕명에 따라 곽여(郭輿)를 위해 산재기(山齋記)를 짓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재로 고려 12시인 중의 하나로 꼽혔다. 노장사상에 심취했으며, 음양비술(陰陽祕術)에도 관심이 많아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함께 삼성(三聖)으로 불렸다. 역학(易學불교(佛敎)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림·글씨에도 능통했는데, 특히 사륙변려체를 잘 썼다고 한다. 작품으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신설(新雪향연치어(鄕宴致語),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栢律寺서루(西樓)등이 전하며, 정사간집(鄭司諫集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개성사[開聖寺] 황해도 우봉현(牛峰縣) 성거산(聖居山)에 있다.

팔척방[八尺房] 스님이 거처하는 방. 사람 하나가 눕고 약간 여유가 있을 정도의 작은 방을 이른다.

찬완[巑岏] 산이 똑바로 정렬된 모양. 산 봉우리가 뾰죽함, 험하고 높음. 성당(盛唐) 시인 이기(李頎)증노오구거(贈盧五舊居)구슬프게 바라보는 가을 하늘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고, 마른 버드나무 높은 가지에 겨울 올빼미 앉아 있네.[悵望秋天鳴墜葉 巑岏枯柳宿寒鴟]”라고 하였다.

홍진[紅塵] 속세(俗世)의 티끌. 번거롭고 어지러운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교와 도교에서 인간세상을 일컬음. 진세(塵世), 속세(俗世).

홍진[紅塵] 길에서 일어나는 흙먼지. 거마(車馬)가 일으키는 먼지. 바람이 몹시 불어 햇빛에 벌겋게 일어나는 티끌.

유인[幽人] 그윽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사람으로 흔히 은자(隱者)를 뜻한다. 주역(周易) 이괘(履卦) 구이(九二)구이는 행하는 도가 평탄하니, 유인이라야 정()하고 길()하리라.[九二, 履道坦坦, 幽人貞吉.]”라고 보이는데, 정이(程頤)는 역전(易傳)에서 유인을 그윽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사람[幽靜安恬之人]’이라고 풀이하였다.

유인[幽人] 은거한 사람. 어지럽고 번잡한 속세(俗世)를 피하여 그윽한 곳에 조용히 숨어사는 사람으로, 은자(隱者), 은사(隱士)를 뜻한다. 소식(蘇軾)의 시 정혜원우거월야우출(定惠院寓居月夜偶出)숨어 사는 이 일 없어 문밖 출입 안 하다가, 우연히 봄바람 따라 밤 깊도록 서성였네.[幽人無事不出門 偶逐東風轉良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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