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명[驢鳴] 후한(後漢) 말에 위왕(魏王)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왕찬(王粲)이 죽자, 함께 노닐던 이들과 함께 찾아와 조문하면서 그가 나귀 울음소리를 좋아했으니 우리 모두 한 번씩 그 소리를 들려주어 그를 보내자.”고 하여, 조객 모두가 나귀 울음소리를 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傷逝>

려왕[厲王] 서주의 10대 왕으로, 즉위 연도는 알 수 없으나 기원전 841년에 죽었다. 려왕이 위나라에서 무당을 데려와 공포정치를 행하자 국인(國人)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려왕은 체() 땅으로 도망가서 살고 주나라는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섭정을 행했다. 주공과 소공 두 사람은 려왕이 체 땅에서 14년만에 죽자 그의 아들 정()을 왕위에 앉히고 주나라의 통치권을 돌려주었다. 선왕의 아들인 유왕(幽王)이 서주의 마지막 왕이다. 14년간의 기간을 공화(共和)라 하고 려왕이 체 땅으로 도망간 해인 기원전 841년을 공화 원년이라 한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대략적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이 해를 기점으로 분명해 지며 사마천 사기(史記)의 제후연표도 이 해부터 시작한다.

려왕배점유[麗王拜岾遊] 고려 태조(太祖)가 금강산(金剛山)에 올랐는데, 담무갈(曇無竭)이 돌 위에 나타나서 광채를 발하였다. 태조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머리가 발에 닿도록 절을 하고 정양사(正陽寺)를 창건하였으며, 절 뒷산을 방광대(放光臺)라 하고 앞 고개를 배점(拜岾)이라 했다 한다. <輿地勝覽 卷四十七 淮陽>

력경[酈瓊] 송 상주(相州) 임장(臨漳) 사람으로 자는 국보(國寶)이다. 송과 금의 전쟁이 처음 일어났을 때 군중 수백명을 모아 종택(宗澤)을 따랐다. 남도 후에는 류광세(劉光世) 부통제(部統制)가 되었다. 소흥(紹興) 7년에 류광세가 쫓겨난 후 배반하여 위제(僞齊)에게 투항하였다. 위제가 폐해지자 금나라의 장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