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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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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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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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이름이 헛되이 전해지지 않음을 이른다.

명비[明妃] 한 원제(漢元帝)의 궁인(宮人)이다. 이름은 왕장(王嬙)이고 자는 소군(昭君)인데, () 나라 사람들이 사마소(司馬昭)의 이름을 피하여 명군(明君)으로 개칭하였다. <漢書 卷 9 元帝紀, 94 匈奴傳>

명비[明妃] 한 원제(漢元帝)의 비()로 절세미인인 왕소군(王昭君)을 이른다. 왕소군은 제국(齊國) 왕양(王襄)의 딸로 17세 때에 원제에게 바쳐졌는데, 마침 흉노(匈奴)에서 사신을 보내 여자를 보내 달라고 청하자, 원제가 후궁(後宮) 가운데서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가려는 자는 자원하도록 명한 결과 왕소군이 자청하여 마침내 선우에게로 시집을 갔다. 처음 왕소군이 원제(元帝)의 후궁에 있을 적에, 후궁이 워낙 많은 관계로 원제가 그들을 다 만날 수 없어 화공(畫工)을 시켜 그림으로 그려 바치게 해서 침석(寢席)을 받들게 했는데, 이 때 다른 궁녀들은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얼굴을 잘 그려 주도록 청탁을 했으나, 왕소군은 전혀 그런 짓을 하지 않아 원제에게 한 번도 은총을 받아 보지 못했다가 마침내 선우에게로 시집가게 되었다 한다.

명비곡[明妃曲] 명비(明妃)는 한 원제(漢元帝)의 후궁 왕장(王嬙). 왕안석(王安石)에게는 2수의 명비곡이 있는데, 첫 수는 명비가 흉노(匈奴)에게 시집가게 되는 전말을, 둘째 수는 흉노의 땅에서 한() 나라를 잊지 못해 하는 것을 읊고, 인생의 즐거움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데 있으니, 실의(失意)하게 되면 호지(胡地)나 한궁(漢宮)이 다를 게 없다 하여 위로의 뜻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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