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용서하고 뒤에 가르친다[先恕而後教]

 

- 설원 군도 [0106]-

 

하간(河間)의 헌왕(獻王)이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은 천하에 마음을 두고, 가난한 백성을 보살피는 데 그 뜻을 쏟았다. 많은 백성들이 죄에 걸려드는 것을 애통해 하였으며, 또 뭇 백성이 편안치 못한 것을 근심하였다. 그래서 백성이 한 명이라도 굶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자신 때문에 굶는 것이라 하였으며, 누구 하나라도 헐벗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또한 자신 때문에 헐벗은 것이라 하였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한 백성이 죄를 지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도 역시 자신이 그를 죄에 빠져들게 한 것이라 여겼다. 이처럼 인의(仁義)가 밝게 세워지고 덕화(德化)가 널리 베풀어지자,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부지런해졌으며 벌을 내리지 않아도 잘 다스려지게 된 것이다. 먼저 용서하고 뒤에 가르치는 것이 요임금의 치도(治道)였다. 또 순()임금 때에는 유묘씨(有苗氏)가 복종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유는 태산(太山)이 그 남쪽에 있고, 전산(殿山) 그 북쪽에 있으며, 그리고 왼쪽은 동정(洞庭)의 파도가 있고, 오른쪽은 팽려(彭蠡)의 흐르는 물이 있다는 천험의 요새를 믿은 까닭이었다. 이들이 이러한 이유로 불복하자, ()가 이들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이에 순임금이 이렇게 말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을 교화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아직 다하지 않았다. 끝까지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뒤에 유묘씨가 복종하기를 청하여 오자, 천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가 우의 뜻을 비난하고 순임금의 덕화 안으로 돌아왔다.”

 

- 說苑 君道 [0106]-

河間獻王曰:「堯存心於天下, 加志於窮民, 痛萬姓之罹罪, 憂眾生之不遂也. 有一民饑, 則曰此我饑之也有一人寒, 則曰此我寒之也一民有罪, 則曰此我陷之也. 仁昭而義立, 德博而化廣故不賞而民勸, 不罰而民治. 先恕而後教, 是堯道也. 當舜之時, 有苗氏不服, 其所以不服者, 大山在其南, 殿山在其北左洞庭之波, 右彭蠡之川因此險也, 所以不服, 禹欲伐之, 舜不許, 諭教猶未竭也, 究諭教焉.’ 而有苗氏請服. 天下聞之, 皆非禹之義, 而歸舜之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