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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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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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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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보[郎仁寶] 낭영(郎瑛)이다. 자는 인보(仁寶), 명 인화(仁和) 지금의 항주시 사람이다. 그가 지은 필기 칠수류고(七修類稿)25에는 송강의 무리들을 당시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므로 삼십육이라 하였다[當時之名三十六].”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그 중 이영(李英)은 있으되 이응(李膺)은 아니며 손립(孫立)은 있고 임충(林冲)은 없다.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 새끼는 아무리 길들여 기르려 해도 야수의 성질을 벗어나지 못한다. 본래 성질이 비뚤어진 사람은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도 끝내는 배반한다는 비유로 쓰인다.

낭잠[郞潛] 관운(官運)이 트이지 않아 오래도록 승진하지 못한 채 낭서(郞署)의 관원으로 늙어가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안사(顔駟)가 문제(文帝) 때 낭관이 된 뒤로부터 경제(景帝)를 거쳐 무제(武帝) 3()를 역임하면서 백발이 다되도록 낭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낭관의 자리에 잠겨 있었다는 뜻으로 낭잠(郞潛)이라는 표현이 쓰이게 되었다. <漢武故事>

낭중[郎中] 연산군 때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서 신에게 제사할 때 반드시 남자 무당을 썼는데, 그를 낭중이라고 불렀다.

낭중[郎中] 진한시대 때 황제의 시위(侍衛)를 담당했던 관직명이다. 진나라 때 시위의 직분을 셋으로 나누었다. 황제의 여인들이 묶고 있는 곳을 드나들며 시위하도록 했던 직위를 중랑(中朗), 궁중에 거하며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낭중(郎中), 궁중 밖에서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외랑(外朗)이라 했다.

낭중[郞中] 낭관(郞官)의 별칭이다.

낭중손옥술[囊中飡玉術] 신선을 배우는 한 방법인데 주머니 속에 숨겨 놓은 비방(秘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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