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실봉황[朝陽失鳳凰] 조정에서 인재들이 쫓겨난 것을 말한다. 조양(朝陽)은 햇빛이 비취는 산의 동쪽으로서,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봉황이 우나니 저 높은 산 언덕, 오동나무 서 있나니 저기 산 동쪽[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이라고 하였다.

조양자[趙襄子]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25년에 죽은 춘추 말 당진국(唐晋國)의 대부로 영성(嬴姓) 조씨(趙氏)에 이름은 무휼(無恤)이다. 조간자(趙簡子) 조앙(趙鞅)의 아들로 당진국의 육경(六卿) 중의 한 사람이었다. 조간자가 아들 가운데 무휼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적자이며 큰 아들인 백로(伯魯)를 폐하고 그의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조앙이 죽고 조양자가 집정하자 그는 지(), (), () 등의 삼가와 힘을 합하여 육경 중 범씨와 중항씨(中行氏)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후에 세력이 강성해진 지씨들의 종주 지백(智伯)이 당진국의 군주 출공(出公)을 쫓아내고 의공(毅公)을 세워 정권을 멋대로 휘두르며 발호했다. 이어서 지백이 공개적으로 조씨들을 향해 영지의 할양을 요구하자 조양자가 거절했다. 이에 지백은 한()과 위() 두 종족과 연합하여 조씨들을 공격했다. 세가 불리했던 조양자는 지금의 산서성 태원(太原)의 진양(晋陽)으로 들어가 농성하며 대항했다. 지백은 분수(汾水)의 물을 막아 진양성으로 흘려보내 잠기게 했다. 이에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조양자는 그의 가신 장맹담(張孟談)을 보내 한강자(韓康子)와 위환자(魏桓子)에게 당진국의 패권을 혼자 차지하려는 지백의 야욕을 설파하고 조씨들과 연합할 경우의 이해득실을 논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백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다. 주정왕(周定王) 16년 기원전 453년 조(), (), () 삼가가 지가(智家)에게 반격을 가하여 멸하고 지가의 영지와 당진국의 공실의 땅 전부를 삼분하여 나누어 가졌다. 이 일을 역사상 삼가분진(三家分晋)이라 한다.

조어산성[釣魚山城] () 나라 여개(余玠)가 사천성(四川省)의 조어산에 쌓은 성 이름이다. 몽고(蒙古)의 몽가한(蒙哥汗)이 군대를 총 동원하여 침공하였으나 몇 개월 동안이나 함락되지 않았다. <讀史方輿紀要 四川 重慶府 合州>

조업[祖業] 신하의 조상들이 임금의 선왕을 받들어 왕업을 창건한 것을 말한다.

조업[曹鄴] 조업은 당() 나라 사람. 자는 업지(鄴之). 태상박사(太常博士)와 양주 자사(洋州刺史)를 역임하였다. 저서에는 조사부집(曹祠部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