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반응형

창랑청탁[滄浪淸濁] 전국 시대 때 초() 나라의 굴원(屈原)이 쫓겨나서 강담(江潭)에 노닐 적에, 한 어부가 굴원이 세상을 불평하는 말을 듣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가면서 말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라고 하였다.

창랑호탁영[滄浪好濯纓]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둔 생활을 즐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서 어부가 노래하기를 창랑수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며, 창랑수 흐리거든 내 발이나 씻으리.”라고 하였다.

창량[蒼凉] 공자(孔子)가 길을 가는데 두 아이가 해[]를 두고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한 아이가 말하기를 해가 처음 뜰 때에는 창창량량(滄滄凉凉)하다가 하늘 가운데 와서는 뜨거우니, 그것은 가까우니 더웁고 멀리 있을 때에는 서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창려[昌黎]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당() 나라 문장 한유(韓愈)의 호이다.

창려노[昌黎老] 창려(昌黎)의 늙은이란 바로 창려 사람으로 창려백(昌黎伯)에 추봉된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창려부삼신[昌黎賦三辰] 창려는 한유(韓愈)의 호이다. 한유가 시를 지어서 자기의 생년월일에 우성(牛星)과 두성(斗星)이 끼어 있어서 평생의 운수가 나쁘다고 한탄하였다.

창려유복[昌黎留服] 창려는 당() 나라 한유(韓愈)의 별호(別號)이다. 한유가 태전(太顚)이라는 승려와 친하게 지내었는데, 그의 여맹상서서(與孟尙書書)원주로 돌아올 무렵, 의복을 남겨 두어 이별의 정표로 삼았으니, 이것은 인정에서 발로된 것이요, 불교를 믿고 복덕을 구하려 함이 아니었다.[及來袁州 留衣服爲別 乃人之情 非崇信其法求福田利益也]”라는 구절이 있다.

창려자[昌黎子] 당 나라 한유(韓愈)의 별호이다.

창려환박수요소[昌黎宦薄愁饒笑] 창려는 당() 나라 한유(韓愈)의 봉호이다. 한유는 특히 직간(直諫)으로 인하여 누차 폄적(貶謫)되어 미관(微官)으로 전전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