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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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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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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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채[上蔡] 상채는 송() 나라 정자(程子)의 제자 사양좌(謝良佐)를 말한다. 사양좌가 처음에 거업(擧業)을 익혀 그로 인하여 이름이 크게 났는데 어느 날 정호(程顥)로부터 너희들이 이곳에서 나를 따르면서 오직 나의 말만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는 학문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떠나가는 것이 낫지 않은가.”라는 책망을 받았다. <宋元學案 卷二十四 上蔡學案>

상채[上蔡] 지금의 하남성 상채시(上蔡市) 서남에 있었던 전국시대 때의 고을로 원래 채읍(蔡邑)이다. 주무왕이 자기의 동생 숙진탁(叔振鐸)을 이곳에 봉하였다. 후에 채평후(蔡平侯)가 나라를 신채(新蔡)로 옮겼다가 채소후(蔡召侯) 때 주래(州來)로 다시 옮겨, 주래(州來)의 이름을 하채(下蔡)로 불렀다. 이에 원래의 채읍 이름을 상채(上蔡)로 부르게 된 것이다.

상채[上蔡] 지금의 하남성 상채시(上蔡市) 서남에 있었던 전국시대 때의 고을로 원래 채읍(蔡邑)이다. 주무왕이 자기의 동생 숙진탁(叔振鐸)을 이곳에 봉했다. 후에 채평후(蔡平侯)가 나라를 신채(新蔡)로 옮겼다가 채소후(蔡召侯) 때 주래(州來)로 다시 옮겨, 주래(州來)의 이름을 하채(下蔡)로 불렀다. 이에 원래의 채읍 이름을 상채(上蔡)로 부르게 된 것이다. 채나라는 춘추 말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할 때 오나라 편에 서서 초나라를 궁지에 몰았다가 국세를 회복한 초소왕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땅은 초나라 땅에 병합되었다.

상채승상동시곡[上蔡丞相東市哭] () 나라 이사(李斯)가 사형장으로 끌려나간 때를 가리킨다. 사형을 받기 직전에 이사가 그의 아들을 돌아보며 사냥개와 매를 몰고 상채(上蔡)의 동문을 나가 토끼 사냥을 하고 싶어도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李斯傳>

상채응[上蔡鷹] 상채의 매사냥은, ()나라 이사(李斯)가 진()나라 승상(丞相)이 되었다가 화를 당하여, 부자가 함께 함양(咸陽) 저자 거리에서 사형을 당하면서 아들을 보고 통곡하기를 너와 내가 고향인 상채(上蔡)에서 매[]와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하던 것이 그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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