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진[白馬津] 지금의 하남성 활현(滑縣) 경내의 중국 고대의 황하를 건너는 유명한 나루터다.

백마청류[白馬淸流] 청류는 청렴결백한 사람을 뜻한다. () 나라 때 배추(裴樞)가 주전충(朱全忠)에게 미움을 받아 농주 사호참군(瀧州司戶參軍)으로 폄척되어 나갈 적에 주전충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백마역(白馬驛)에서 죽여 시신을 백마하에 던져 버리게 한 데서 온 말인데, 이에 앞서 주전충의 비서인 이진(李振)이 주전충에게 말하기를 이들은 스스로 청류라 자칭하는 자들이니, 저 백마하에 던져서 영원히 탁류(濁流)로 만들어야 한다.”라 하니, 주전충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唐書 卷一百四十>

백마총[白馬塚]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의 사상록(槎上錄)에 이르기를 일본의 연대기(年代記)를 보면, ‘왜황(倭皇) 응신(應神) 22년에 신라 군대가 명석포(明石浦)에 들어오니 대판(大阪)과의 거리가 겨우 1백 리 정도였다.’라 하였다. 적간관(赤間關) 동쪽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왜인들이 그 곳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기가 바로 백마(白馬)의 무덤인데, 신라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일본 사람들이 화의를 청하여 군대를 풀고 백마를 잡아 맹약한 후 그 말을 저 곳에 묻었다.’고 한다.”라 하였고,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 의하면, 응신 22년은 신라 유리왕(儒理王) 8년에 해당하고, 중국으로는 진()의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이 되는 해인데, 그 사실이 동사(東史)에는 실려 있지 않다. 해동기(海東記)에 의하면, 달민천황(達敏天皇) 계묘년에 신라가 서비(西鄙)를 쳐들어왔다고 되어 있는데, 그 해는 신라 진평왕 5년에 해당하고, 또 원정천황(元正天皇) 경신년에도 신라가 서비를 쳐들어왔다고 했는데, 그 때는 신라 성덕왕 19년이지만 그 사실이 이 동사에는 다 빠지고 없다. 지금 동래(東萊) 바다 절영도(絶影島)에 옛 진지가 있는데,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 신라 태종이 왜국을 정벌할 때 쌓은 것이라 하여, 이에 태종대(太宗臺)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