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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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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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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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西伯] 서백은 주() 나라 문왕(文王)으로, 문왕이 주 나라를 세우기 전에 은() 나라의 서백으로 있었다. 문왕이 은 나라 주()를 물리치자 봉황이 글을 물고 오는 상서가 있었다고 한다.

서백[西伯] 주문왕 창()을 말한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에 의해 서백(西伯)에 봉해지고 그의 아들 주무왕(周武王)에 이르자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서백창성[西伯彰聖]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맏인 태백(太伯)과 둘째인 우중(虞仲), 그리고 태강(太姜)이 낳은 막내 계력(季歷), 이렇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계력이 장차 서백(西伯)이 될 창()을 낳자 그 창이 성덕이 있음을 알고는 계력에게 위()를 전할 뜻을 비쳤으므로 태백·우중이 자기 아버지 뜻을 알아차리고 형만(荊蠻)으로 망명하여 살면서 막내 계력에게 양보하였다.<史記 周本紀>

서벽[西壁] 홍문관원의 별칭이다. 홍문관원이 사진(仕進)하여 앉는 좌차(座次)가 그 벼슬의 별칭이 되었으니, 곧 직제학(直提學전한(典翰응교(應敎부응교(副應敎)를 동벽, 교리(校理부교리(副校理수찬(修撰부수찬(副修撰)을 서벽, 박사(博士저작(著作정자(正字)를 남상이라 했다. 그리고 모두 경연을 겸임하였으며, 부제학에서 수찬까지는 또 지제교(知製敎)를 겸임하였다.

서복[徐福] 진시황(秦始皇)의 명을 받고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러 떠난 방사(方士)의 이름인데, 뒤에 일본에 건너갔다는 설이 있다. <史記 秦始皇本紀>

서복사[徐福祠] ()의 방사(方士). 혹 서불(徐市)이라고도 한다.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초(不死草)를 구해온다고 진시황(秦始皇)을 달래어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거느리고 누선(樓船)을 타고 바다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일행이 일본에 건너가 정주(定住)했다 하며 와까야마[和歌山] 지방에 그 유적과 신사(神祠)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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