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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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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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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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당[馮唐] 풍당은 한 문제(漢文帝) 때에 중랑서장(中郞署長)을 지냈는데, 무제(武帝) 때에는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이가 90여 세가 되어 벼슬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아들에게 대신 벼슬을 내리었다.

풍당[馮唐] 한(漢) 나라 안릉인(安陵人)으로 문제(文帝) 때 중랑서장(中郞署長)에 발탁되었다. 때마침 흉노가 국경의 근심거리로 등장하게 되자 문제가 풍당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염파(廉頗)와 이목(李牧) 같은 장수를 얻을까?”라고 하니, 풍당은 “한 나라의 법이 상은 가볍고 죄는 무거우니 비록 염파나 이목을 얻는다 해도 쓸 수 없다.”라고 하면서 운중수(雲中守)인 위상(魏尙)이 흉노를 물리치고도 오히려 죄에 걸려 있는 것을 얘기했다. 그러자 문제는 위상을 복직시키고 풍당을 거기도위(車騎都尉)에 제수하였다. <史記 卷一百二>

풍대[豐臺] 중국 북경 우안문(右安門) 밖 완평현(宛平縣)에 있는 대의 이름이다.

풍대특[豐大特] 풍수(豐水)에 살았다는 큰 소. 진 문공(秦文公) 때 옹남산(雍南山)에 있는 큰 가래나무를 베었는데 벤 나무 속에서 한 마리의 청우(靑牛)가 나와서 풍수로 들어갔는데 가끔 발작하곤 했다. 그 뒤에 노특사(怒特祠)를 세워주었다. <錄異傳>

풍도중규명[風饕衆竅鳴]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거대한 흙덩어리가 기운을 내뿜나니, 그 이름을 바람이라 한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났다 하면 일만 개의 빈 구멍들이 성내어 울부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呺]”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풍두[豊頭] 연산군이 처용가면(處容假面)을 풍두(豊頭)라 고쳐 부르고 거기에 금은주옥(金銀珠玉)을 장식하였다.

풍등[馮鄧] 광무제(光武帝)를 도와 후한(後漢)의 중흥을 이룩한 공신(功臣)인 풍이(馮異)와 등우(鄧禹)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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