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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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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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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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馮郞] 한 문제(漢文帝) 때에 중랑서장(中郞署長)을 지낸 풍당(馮唐)을 가리킨다. 무제(武帝) 때에는 현량(賢良)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풍랑출무거[馮郞出無車] 예전 제 나라의 정승인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사람이 손[客]을 좋아하여 집에서 먹고 자는 손이 3천여 명이었다. 그때에 풍완(馮湲)이라는 사람이 와서 손 노릇하는데 저녁에 가위[鋏]를 두드리며 “나가는데 수레가 없다.”라 하고, 노래하여서 수레를 주었다. 그 후에 맹상군이 나라에서 정승이 면직되었을 적에 풍완의 힘으로 복직된 일이 있다.

풍뢰[風雷] 폭풍이 불고 우레가 진동하는 것처럼 임금이 노여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풍류[風流] 풍류는 곧 악(樂)으로 제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예(禮)·악(樂)·형( 刑)·정(政)의 하나, 최고의 악은 소리가 신묘하고 아름다운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중후하고 여운이 있어 덕의 기상이 있다 한다. 예기(禮記) 樂記에 “예로써 인심을 유도하고 악으로써 사람의 소리를 조화시키고 정(政)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통일시키고 형(刑)으로써 사회의 부정을 방지한다. 예악형정의 궁극 목적은 모두 같으니, 인심을 한 곳에 모아 천하를 다스리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같은 책에 “청묘(淸廟)의 악장을 연주할 때 쓰는 비파는 그 줄이 붉은색 실을 꼬은 것으로 박자가 드물어 중후한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풍류진[風流陣] 당현종(唐玄宗)이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술에 취하여 놀 때, 현종과 귀비가 각각 백여 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양편으로 늘어서서, 풍류진이라 부르고 서로 공격하는 희롱을 하되 붉은 속치마를 입고 비단천으로 깃발을 만들었으며, 진 편은 큰 술잔으로 벌주를 마시게 했었다. <開元天寶遺事 風流陣>

풍류진[風流陣] 천보유사(天寶遺事)에 “명황(明皇)이 귀비와 함께 주연(酒宴)이 한창 벌어질 무렵에 이르면 귀비에게는 궁비(宮妃) 1백여 명을 거느리게 하고 임금은 중소귀(中小貴) 1백여 명을 거느려 두편으로 나누어 액정(掖庭) 가운데 배치하고 이름을 ‘풍류진’이라 하는 한편 하피(霞被)와 금주(錦袾)를 벌여 표기(標旗)를 만들고 쌍방이 서로 겨루게 하여, 패한 자에게는 큰 잔에 술을 따라 벌(罰)하는 것으로 웃음거리를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라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다.”라고 하였다.

풍륜[風輪] 귀한 사람이 타는 수레. 유효작시(劉孝綽詩)에 “월전(月殿)에 붉은 깃발 빛나고, 풍륜(風輪)에 보배로운 방울이 울린다.”라고 하였다.

풍륜[風輪] 불교에서 말하는 바 이 세계를 받치고 있는 땅속의 3륜(輪) 가운데 가장 밑에 있다는 수레바퀴로, 밑바닥으로 전락한 말세의 양상을 뜻하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위로는 비상의 끝 역시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아래로는 땅의 끝 풍륜과 함께 일개 치상(癡想).[上窮非想亦非非 下與風輪共一癡]”이라는 표현이 있다.

풍륭[豐隆] 구름을 맡은 귀신 이름. 뇌사(雷師)라고도 한다. <廣雅釋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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