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유상원[東籬幽賞遠] () 나라 때 도잠(陶潛)이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국화를 몹시 좋아하였는데, 그가 지은 시에 동쪽 울서 국화꽃을 따 들고, 한가로이 남쪽 산을 바라다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 하였다. <南史 卷75 隱逸列傳上 陶潛>

동리일타[東籬一朶] () 나라 도연명(陶淵明) 잡시(雜詩)동쪽의 울밑에서 국화를 따다 무심히 남녘 산을 바라본다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에서 나온 것으로, 국화를 가리킨다.

동리진물색[東籬眞物色] 도연명이 99일 중양절에 좋아하는 술도 없이 울타리 가의 국화꽃을 따면서 하염없이 그 옆에 앉아 있었는데, 때마침 자사(刺史)인 왕홍(王弘)이 보낸 백의 사자(白衣使者)가 술을 가지고 왔으므로, 취하도록 마시고 돌아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93 陶潛傳>

동림[東林] 동림서원(東林書院)의 약칭이다. ()의 양시(楊時)가 강소성 무석현(無錫縣)에다 동림서원을 세워두고 학문을 강론했는데, 당시 사대부들로서 가슴에 경륜을 지니고 세상과 맞지 않은 자들이 많이 모여들어 그때 집권파인 위충현(魏忠賢) 일파로부터 동림당(東林黨)이라는 지목을 받고 숙청까지 당했다가 충현이 복주(伏誅)된 후 다시 번성하였다.<明史 顧憲成傳>

동림[東林] 동쪽에 있는 숲으로, 일본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