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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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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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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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范睢] 전국 시대 위() 나라 사람으로 진 소왕(秦昭王)을 섬겨 승상(丞相)이 되고, 응후(應侯)의 봉작(封爵)까지 받았다가, 자기와 가까운 왕계(王稽)가 죄를 져 죽음을 당하자, 채택(蔡澤)을 추천하여 자기를 대신하게 하고 벼슬을 그만두었다.

범수[范睢] 태어난 해는 미상이고 기원전 255년에 죽었다. 전국 때 진나라의 대신을 지냈으나 원래는 위()나라 출신이다. 이론과 변설에 능했다. 남의 모함을 받아 위나라의 재상 위제(魏齊)에게 잡혀 곤장을 맞은 치욕을 당하여 중상을 입었다가 주검을 가장하여 목숨을 구해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고 진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의 소양왕에게 여러 번에 걸쳐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여 군주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실권자인 양후(穰侯) 위염(魏冉)의 전횡과 발호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양왕은 위염으로부터 승상의 인장을 회수하여 범수에게 주고 지금의 하남성 보풍현(寶豊縣) 서남쪽의 응()을 식읍으로 내리고 응후에 봉했다. 그가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기간 중 진나라를 제외한 육국에 대한 외교를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에 입각하여 각개격파 전술을 사용했다. ()과 조()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전국시대 때 제일 큰 싸움이었던 장평대전 후 명장 백기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를 대신하여 친구 정안평(鄭安平)을 천거하여 싸움에 임하게 했으나 그는 출전할 때마다 싸움에서 패했다. 이를 두려워한 범수는 스스로 진나라의 재상 직에서 물러났다. 일설에 의하면 소양왕이 그의 죄를 추궁하여 사형에 처했다고도 한다. <史記 范睢蔡澤列傳>

범숙[范叔] 전국 시대의 위() 나라 사람 범수(范睢)를 이른다. 범수는 수가(須賈)의 고자질로 매를 맞고 진()으로 망명하여 뒤에 진의 재상이 되었다. 뒤에 수가가 진에 오자 범수는 복수할 마음을 갖고 일부러 한미한 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수가를 만났는데, 수가는 그의 한미한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두꺼운 옷 한 벌을 그에게 주었고, 그로 인하여 범수도 수가를 달리 대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79 范睢列傳>

범숙한편고[范叔寒偏苦] 전국 시대 위() 나라 범수(范睢)의 자()가 숙()이다. 그는 중대부(中大夫)수가(須賈)를 섬기다가 진() 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고치고 재상이 되었다. 그 후 수가가 위 나라 사신(使臣)으로 진 나라에 갔는데, 범수가 낡은 옷을 입은 누추한 모습으로 찾아가자 수가가 동정하여 범숙은 늘 추위에 떠는 것이 이와 같은가.”라고 하면서 제포(綈袍)를 주었다 한다. <史記 范睢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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